벌써 일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전반기 6개월을 되돌아 보고 하반기 6개월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봅니다
평안하십니까? 이제는 우리의 삶에 여유가 좀 더 있어졌나요 아님 여전히 조급한 삶의 연속인가요? 예배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이 우리에게 있나요? 코로나 이 후로 예배 드릴 교회를 정하지 못한 저에게는 예배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지난 5월과 6월도 주신 기회로 인해 말씀 전함과 강의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대면과 비대면을 병행해서 강의와 훈련을 합니다. 14 명의 ㅅㄱㅅ 후보생 오렌테이션에서 본인을 아는 것과 타인을 아는 것이, 타 문화 이해에 대한 기본임을 전제로 강의 하면서 지난 저의 사역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단 유라시아 대회에서 팀과 지도력이라는 제목으로 웍샵을 하면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고, ㅅㄱ와 팀이라는 이름 하에 함께 모인 우리들의 현 주소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그 분의 나라가 복음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이 그 소식을 듣고 받아들임으로 그 날이 왔을 때 계시록 7:9-10절 묘사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를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그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다들 각자의 방법대로 그 일을 하고 있지만, “함께, 더불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동료는 견제의 대상도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그 전제가 더욱 절실한 요즘입니다. 신뢰와 투명성, 그리고 정직함과 열려진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이 단어들이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요즘 히브리서를 묵상하고 있는데, 그 분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복음을 들었지만 다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세대는 기쁨의 소식을 들었지만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어지지 않았다…
정말 두려운 말씀입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그 말로 인해 나의 삶이 그 분의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지 않음에도 아무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의 여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내가 나중에 주님을 만났을 때 “나는 너를 모른다” 할까 오늘도 두렵고 떨림으로 하루를 시작해봅니다. 오늘 주시는 은혜는 내일까지 유효하지 않다. 오늘의 은혜는 오늘만의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을 생각해봅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